[토요 호러가이드] <스크림> "감독님, 타고나셨나 봐요"

김혜민 기자 / 기사승인 : 2020-03-21 04: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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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아 숨기고 있던 취향, 매주 하나씩 <호러 상자>를 열어보자.

 

[넥스트뉴스=김혜민 기자] 영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웨스 크레이븐 감독 얘기를 하려 한다.

기자는 웨스 크레이븐을 호러의 거장이라고 부른다. 히치콕을 두고 어떻게 크레이븐을 ‘거장’이라 칭하냐고 묻고 싶겠지만, 히치콕은 스릴러에 훨씬 재능이 있는 감독이다.(장르를 불문하고 히치콕의 그늘에서 자유로운 감독이 얼마나 되겠나 싶지만)

웨스 크레이븐은 1972년 ‘왼편 마지막 집’으로 데뷔해 2011년까지 메가폰을 잡았다. 근 40년을 호러 한 장르만(사실 데뷔 전 포르노를 편집하며 입에 풀칠하긴 했다) 판 사람이다.

하지만 웨스 크레이븐은 폭력적인 사람도 아니고 호러 마니아도 아니다. '그냥 잘 팔렸다'가 크레이븐 감독이 계속해서 호러를 만든 이유다.

 

실제로 웨스 크레이븐은 휘튼 칼리지에서 영문·심리학 석사를, 존스 홉킨스에선 철학·창작 석사 학위를 딴 엘리트에 누벨바그의 거장인 트뤼포 감독 영화를 좋아했으며 ‘왼편 마지막 집’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호러가 정확히 뭔지 몰랐다. 호러에 대한 개념은 없었으나 재능이 있었다.

1970~1980년대 호러를 이끈 감독들은 다른 장르를 손대거나, 영화를 제작했지만 망하거나, 죽어서(!) 이후 만들어진 호러는 죄 극장에는 걸리지도 못하고 비디오로 출시되는 장르로 전락했다. 스크림은 1990년 개봉해 상영관을 TV에서 극장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그럼 크레이븐 감독이 1984년도에 제작한 ‘나이트메어’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주인공 크루거는 호러 아이콘이 됐고 영화도 그럭저럭 흥행에 성공했으나 속편부터는 다른 감독이 제작을 맡았으니 여기서는 잠시 접어두고 스크림 이야기를 하자.

지금부터는 영화 스포일러가 마구 포함돼 있다. 혹시라도 스포일러를 싫어하는 관람 예정자는 유의하기 바란다.

오프닝엔 케이시(드루 배리모어)가 등장한다. 케이시는 모르는 사람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이를 단순한 장난이라고 생각해 농담 따먹기를 하다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두려움을 느낀 케이시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덩치 큰 미식축구 선수고 지금 이리 오고 있으니 장난은 그만두라고 하지만 의문의 목소리는 남자친구의 신상을 읊으며 정원 불을 켜 보라고 요구한다.

 

케이시는 시키는 대로 불을 켜고, 의자에 묶여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친구 스티브를 발견한다. 패닉에 빠져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울부짖는 케이시에게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넌 공포영화도 안 봤어? 그런 말 하는 애들은 꼭 뒤지잖아.’

케이시와 스티브가 배가 갈려 죽고 나무에 매달리는 최후를 맞이하는 데는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당시 드루 배리모어는 영화 ‘E.T’를 통해 미국의 국민 여동생이 됐으나 술과 마약에 중독된 하이틴 스타였다. 여러모로 화제성 있는 배우를 데려다 낚시용 오프닝이나 찍고 진짜 주인공은 따로 둔 것부터 범상치 않은 시작이다.


스크림의 ‘진짜’ 주인공 시드니는 1년 전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다. 시드니의 증언으로 범인은 잡혔으나 마을에 새로운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시드니가 같은 사람에게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자는 내용의 전화를 받자 동일범의 소행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며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러자 언론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시드니를 괴롭히고 주변 사람들은 시드니를 동정하기는커녕 씹고 뜯고 놀려먹는 가십거리로 소비한다.


▲사이코패스도 신변의 위협을 받는 친구에게 이런 소리는 하지 않을 거다.


살인마가 잡히지 않아 휴교령이 내려지고 시드니는 친구들이 여는 파티에 참석한다. 여기에서 또 가면살인마가 등장해 미쳐 날뛰지만 결국엔 상당히 속 시원한 결말을 낸다. 직접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고 보지 않았지만 궁금하다면 네이버와 왓챠 플레이에서 시청할 수 있으니 찾아보면 된다.

 

이제 왜 이 영화가 좋은지 얘기해보자. 우선 시드니는 가련한 주인공이 아니다. 수화기 너머 인물이 너희 집 현관 앞에 있다는 말에 문을 열고 밖을 살피는 ‘깡’이 있다. 스토커처럼 자신을 쫓아다니는 앵커에게 주먹을 날리기까지 한다. 살인마의 협박에 어쩔 줄 몰라하며 울거나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또 웨스 크레이븐은 대범하게도 영화 안에서 본인과 호러 장르를 희화화한다.

 

▲감독님 영화가 뭐가 어때서요?

 

이걸로도 모자라 대놓고 호러 영화의 클리셰를 지적한다. 의문의 발신자가 시드니에게 “제일 좋아하는 공포영화가 뭐야?”라고 묻자 시드니는 “난 공포영화 안 봐. 만날 거기서 거기잖아. 멍청한 살인마랑 가슴 큰 여자 나와서 쫓고 쫓기는 내용, 유치해”라고 대답한다.

 

▲너나 잘하세요.

▲하도 답습해대서 이제 걸작 호러의 전유물은 아니다.

 

이런 얘기도 한다. 첫 번째, 섹스하면 죽는다. 두 번째, 술과 마약을 하면 죽는다. 세 번째, ‘곧 돌아올게’ 같은 말을 하면 죽는다.

 

웨스 크레이븐은 클리셰를 지적하고 자신을 제 3자로 두는 등 대사를 통해 내내 '이건 영화가 아니라 진짜 현실'이란 뉘앙스를 깔아둔다.

 




▲누가 호러 영화 주인공이 되고 싶겠는가..

 

이런 대사를 듣다 보면 영화 초반에서 언론과 주변인이 시드니를 대했던 태도가 떠오른다. 감독은 이를 통해 그 연출이 '그냥' 한 게 아니라 피해자를 대하는 다수의 태도를 비판하려는 목적임을 분명히 한다.

 


▲이런 건 시청자의 알 권리가 아니라 2차 가해다.

 


▲이후 시드니는 화장실 칸에 숨는다. 무고한 피해자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건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딱 한 장면, 정상적인 반응이 있다. 괴한이 사용한 마스크를 구해 쓰고 학교를 뛰어다닌 학생들을 퇴학시키는 교장 선생님이다. "이건 그냥 장난이에요. 퇴학이라니 불공평해요" 라고 말하는 학생에게 교장은 이렇게 답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 교장도 나중에는 혼자 마스크를 쓰고 거울을 보며 장난을 친다.

 

웨스 크레이븐은 "음산하면서도 뭔가 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할 수 있는게 호러 뿐이었고 사람들이 좋아해주니 계속 하게 됐다. 다른 호러 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고 했으나 스크림에서는 끊임없이 다른 호러 영화를 언급한다.

 


 

할로윈,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 엑소시스트, 버닝, 이블데드, 헬레이저,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양들의 침묵, 싸이코, 캐리까지 제목이 나오는 모든 영화는 ‘스크림’ 이전에 호러를 양지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그냥 사람들이 좋아해서, 다른 걸 할 기회가 없어서 호러를 한다'고 했지만 웨스 크레이븐은 호러를 사랑했을 것이다. 비디오가게 구석으로 전락한 장르를 다시 메이저로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으리라. 

 

호러는 자극적인 죽음과 자극적인 노출만 마구 집어넣고 예상한 순서대로 등장인물들이 죽는, 뻔한 장르가 아니라는 걸 피력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곳곳에 심었다. 심지어 결말도 그렇다.

 

▲결말에 대한 힌트를 주자면, 앞서 말했듯 시드니는 가련한 주인공이 아니다.

 

보통 호러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따라붙는 편견은 ‘폭력적인 사람일 것 같다’는 거다.

그러니까 폭력적인 영화를 계속 보면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하고 결국에는 범죄를 저지르고 어쩌고 하는 논리 말이다.

 

▲아, 글쎄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생각해보자. 연쇄살인마의 집에서 XXX등급 포르노와 스너프 필름을 표방한 스플래터 영화가 나오는 것과 네모네모 스폰지밥 극장판이 나오는 것 중 뭐가 더 무서운지. (연쇄살인범 파일, 해럴드 세터)

 

▲"Don't blame the movies."
▲"The movies don't create psychos. Movies just make psychos more creative."


웨스 크레이븐은 스크림을 통해 호러를 다시 극장으로 복귀시켰고 호러를 좋아한다고 해서 범죄자가 되지도 않는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했다.

 

많은 호러 마니아들이 아무리 부르짖어도 씨알도 먹히지 않던 논쟁을 영화 한 편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기자가 웨스 크레이븐 감독을 사랑하고, 기꺼이 거장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이유다.

 

김혜민 기자 reporte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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