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농구계의 전설, 신동파를 만나다

이주현 기자 / 기사승인 : 2019-08-01 17: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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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뉴스=이주현 기자] 한국 농구가 위기다. 경기장을 찾는 관객 수는 물론이고 시청률도 줄었다. 얼마전에는 농구선수 하승진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국 농구는 선수가 봐도 재미가 없다”며 한국 농구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한국 프로농구의 부진 원인으로 팬은 선수들의 기량 저하를, 몇몇 감독은 다재다능한 선수의 부재를 꼽는다. 실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모든 농구 팬이 한마음으로 바라는 것은 결국 한국 프로농구의 부활일 것이다.

 

부진한 ‘요즘’ 농구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넥스트뉴스가 농구계의 전설 신동파 감독을 만나 ‘그때 그 시절’의 달콤한 향수에 빠져봤다. 

 

▲ 농구계의 거장 신동파 감독(오른쪽)이 단골 맥주집인 송파구 방이동 '밀러타임'에서 김병윤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넥스트뉴스>


Q. 요새 근황이 어떻게 되나
A. 하루 쉬고 하루 놀려고 하는데, 찾는 사람이 많아 쉽지가 않다. 한동안 협회에 힘을 보탰고 4년 정도는 대한체육회 이사를 맡아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요즘은 일주일에 두어 번 산행을 한다. 자연을 마주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도 가끔 손자들 보는 재미에 비할 수는 없다. 국가대표 했을 당시에 친했던 선수들과 두 달에 한번씩 만나기도 한다. 올 11월에는 1966년에 방콕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농구권대회에서 우승했던 기념으로 태국에 다녀오기로 했다.

Q. 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A.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야구에 미쳤었다. 나도 박현식 같은 선수가 돼야겠다고 생각해 동네 골목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휘문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야구부에 들었는데, 한두 달쯤 지나 감독이 나를 불렀다. ‘야구는 몸이 튼튼해야 하는데 너는 키만 크고 몸이 약해서 야구랑은 안 맞는다’며 공부나 하라는 식으로 얘기하더라. 얼마 해보지도 못하고 야구부에서 쫓겨난 거다. 어린 마음에 화가 나서 다음날부터 그 야구장 쪽을 등지고 생활을 했다.

 

그러다 몇 달 뒤엔가, 선생님 한 분이 교무실로 오라더니 특별활동 하는 거 없으면 농구장에나 오라는 거다. 그게 1957년 6월, 7월쯤이었다. 사람 운명이라는 게 참 신기하게도 내가 하고 싶던 야구에서는 퇴짜를 맞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농구는 지금껏 하고 있다.


“나는 야구를 했어도 유명했을 것”


Q. 야구를 했어도 농구만큼이나 유명해졌을 것 같은데
A. (웃음) 나도 그 생각을 하는데... 내가 뭐든지 정확한 편이다. 동네에서 구슬치기를 해도 내가 다 딸 정도로, 동그란 거에 대한 운동신경이 있었다. 그래서 만약에 내가 야구를 했다면 (농구와) 피차로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60여 년 동안 농구계에 있으면서 농구한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Q. 농구라는 종목에 특별한 매력이 있는지
A. 우리나라 구기종목 중 제일 공이 큰 게 농구공이다. 근데 그 공을 집어넣는 링은 제일 작다. 축구 골대 봐라, 얼마나 넓은지. 배구도 코트만 넘겨 때리면 되고. 그 매력에 홀딱 반한 것 같다. 손끝으로 공의 감각을 느끼며 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아주 정밀해야 하고, 손가락에 조금이라도 부상을 입지 않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는 데에도 많이 도움을 받았다.

 


“깜깜한 밤하늘에 별이 하나만 반짝이면 그건 고독한 것”


Q. 대학 들어갈 때 스카우트 싸움이 치열했을 텐데
A. 당시 휘문고등학교 농구선수들은 자연스럽게 고려대학교에 진학하곤 했다. 근데 문제는 고려대학교 농구팀이 굉장히 약해 해체되다시피 했다는 거다. 반면에 연세대학교에는 센터에 김영일 선배, 가드에 김인건 선수. 그러니 학교의 전통을 지켜야 되나, 아니면 내가 가야 할 길을 가야 되나 하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 아버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야 동파야, 너 저 깜깜한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은하수처럼 있는데 그 별들 중에서 더 빛나는 별이 돼야 된다. 깜깜한 밤하늘에 별이 하나만 반짝이면 그건 고독한 거다.” 연세대학교에 가서 스타팅 파이브 안에 들어가면 내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아버님이 말씀해주신 거다.

“슛은 ‘천부적 소질’ 있어야…내 슛은 타고난 것”


Q. 슛의 도사였는데, 본인의 슛은 노력이다? 아니면 타고났다?
A. 내가 선수들을 가르칠 때 ‘많이 훈련한 선수는 꼭 성공한다’고 얘기한다. 근데 사실 거짓말한 거다. (웃음) 10을 기준으로 본다면 6이 소질이고 4가 노력이다. 그런데 소질이 있는 선수가 노력을 안 하면 도태돼버린다. 나 같은 경우엔 고등학교 3학년 때 하루에 슛을 500개씩 쐈다. 졸업할 때쯤엔 몇 만 개를 쏜 거다. 대학 졸업하고 입행해서는 내 감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200개 정도만 쐈다. 선수가 되고 노련해지면서는 50개에서 100개 정도. 이미 슛 던지는 감각이 몸에 배어있고 폼도 형성돼 있으니까 그렇게 많이 안 해도 됐던 거다.

우리의 영웅에 손대지 마라

 

Q. 필리핀과의 경기에서도 필리핀 관객들의 응원을 받았다는데
A. 내가 치고 들어가다가 필리핀 선수가 파울을 해서 걸려 넘어지면 관중들이 난리가 났다. 그 선수를 빼라고 종이며 바나나 껍질이며 필리핀 감독석으로 던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사진기자들은 나를 둘러싸서 라이트 키고 사진을 찍고 있으니, 그런 상황에서 내가 벌떡 일어날 수는 없지 않나. 누운 채로 샛눈을 뜨고 아픈 척하는데 그렇다고 계속 누워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 팬 관리는 해야 되니까 아프지도 않은데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프리드로우라인으로 갔다. 심판한테는 꼭 인사를 했다. 그러면 필리핀 기자들이 항상 신문에 ‘필리핀 농구 선수들이여, 신동파의 매너를 배워라’ 하는 식의 기사를 썼다.

 

 

Q. 방콕 아시아게임에서 우승한 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는데
A. 농구팀이랑 축구팀이 전통적으로 가깝다. 평소에도 불암산 가서 몰래 축구하고 농구하고 그랬으니까. 방콕 아시아게임에서 두 팀이 다 금메달을 땄는데, 귀국 전날 축구팀에서 도전을 걸어왔다. 선수촌 바로 앞 맥주촌에서 우승 기념으로 술을 마시자는 거다. 각 팀에서 8명씩 모여 마주보고 앉아 술을 마셨다. 근데 술 마시는 데에 룰이 몇 개 있었다. 노래 불러도 안 되고, 시비 붙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고, 자도 안 됐다. 맥주를 마셨으니까 화장실만 왔다갔다 하는 거다. 마지막에 더 많은 인원이 남는 팀이 승리하는 자리였다.

 

한 12시쯤 되니까 축구팀에서 1명이 없어졌다. 술 취해서 들어간 건데, 1시쯤 되니까 1명이 또 없어졌다. 그렇게 마시다보니까 농구팀 후배가 갑자기 와가지고 ‘형님들 큰일났어요’ 하기에 ‘뭐가 큰일나 임마’ 했더니, ‘저희 다섯 시 집합인데 지금 네 시 반이에요’ 이러는 거다. 그때 보니 축구팀은 5명이 남아 있고 우린 또 가야 되니까 축구팀한테 항복을 하든지 어쩌든지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축구팀에서 ‘야 우리 항복! 됐냐 이 새끼들아?’ 이러더라. 거기서 박한 선수가 하는 말이, ‘농구팀은 이제 목을 축이기 시작했는데 무슨 개뼉다구 같은 얘기냐’고. (웃음)


“우리 대한민국의 아들 신동파 선수, 피를 철철 흘리면서…”


Q. 현역 생활 때 부모님이 애타 하시던 사연도 있을 것 같은데
A. 1969년도 방콕 때 시합을 하다가 눈이 찢어져서 의무반에 갔다. 지혈제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니까 눈이 잘 안 떠지기에 시합 중에 뛰다 말고 반창고를 뜯어버렸다. 아홉 점 차이로 시합을 이기고 의무반에 소독을 하러 갔는데, 중계석에 있는 이광재 아나운서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다 들리는 거다. ‘우리 대한민국의 아들 신동파 선수, 피를 철철 흘리면서...’ 실제로는 피가 한 방울도 안 났는데도. 근데 어머니는 집에서 라디오로 얘길 듣고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눈알이 빠진 줄 알고 펑펑 우셨다고 한다. 당시에는 불효하는 것 같아 죄송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니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또 이런 적도 있다. 시합하다 부딪혀서 조그만 파스 두 장을 붙이고 다시 뛰는데, 이광재 아나운서가 ‘우리 신동파 선수, 다리에 붕대를 칭칭 부여감고...’ 한 거다. 내가 귀국하니까 우리 어머니가 이번엔 다리가 잘린 줄 알았다고. 그 다음날 이광재 씨를 한국음식점에서 만났는데 목소리가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목이 쉬었다더라. (웃음) 여러모로 대단한 아나운서다.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A. 요즘 농구가 옛날 전성기에 비해 좀 침체기에 빠져 있지 않나. 프로야구나 축구에 많이 밀리기도 하고. 프로농구가 다시 인기를 얻고 팬들의 관심을 받으려면 국제대회나 선수권대회, 올림픽 같은 경기에 자주 나가 성적을 내야 한다. 가슴에 태극기를 단 국가대표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선수 개개인이 국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주길 바란다.

 

이주현 기자 reporter@next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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