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죽은 자는 말이 없다···황색언론의 준동(蠢動)

김인환 기자 / 기사승인 : 2020-07-13 20: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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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취재는 일반적으로 ‘합리적 의심’과 ‘상상’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과정은 냉철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며칠간 이런 의심과 상상이 팩트로 둔갑한 현장을 목도했다. 거기엔 엄청난 비윤리적 취재와 질문이 난무했다.

“목을 맨 건가요, 떨어진 건가요?” “외모가 심하게 손상됐나요?”

귀를 의심했다.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취재 윤리도 없었다. 사망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는 건 기본이다. 이런 취재에 제동을 건 건 오히려 경찰 관계자였다.

가짜뉴스도 난무했다. 수색이 한참일 때도 기자들 단톡방엔 ‘시신발견’이라는 메시지가 수시로 올라왔다. 이를 아예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 또 저녁 9시30분경 서울대병원 응급센터 앞에는 10여명의 기자들이 대기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른바 ‘지라시’와 가짜뉴스 유포자는 기자들 자신이었다. 사실이냐는 질문에 “확실하다”고 자신하는 기자도 있었다.

이들은 이런 지라시 유포행위를 경쟁하듯 한다. 마치 “나 이정도야”라고 과시하듯. 심지어 출처도 불분명한 전 비서의 고소장을 마치 사실인 냥 유포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근거’와 ‘팩트’를 입에 달고 살면서 왜 그런 눈에 보이는 뻔한 ‘구라’에는 쉽게 무너지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이런 황색언론이 ‘조국 펀드’를 어떻게 다뤘는지도 똑똑히 봤다. 상상인 그룹 불법대출과 조국 전 장관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게 밝혀졌지만 그 과정에서 인권이나 취재윤리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사과하거나 바로 잡는 언론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저 배설과 돈의 쾌락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어느새 파렴치한 성추행범이 돼있었다. ‘성추행’ 한 단어로 그의 모든 공이 덮여버린 그런 날이다. 모든 언론은 “진실은 묻혔다”며 고소인 측의 진술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또 고소인 측과 시민단체는 굳이 발인하는 날에 맞춰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 그래도 죽음 앞에서 한 번쯤은 쉬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정을 든 유족들이 13일 오후 경남 창녕군 박 시장 생가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한 이’의 아픔을 무시하자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진실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어떤 비윤리가 판칠 것인가 우려스럽다.

준동(蠢動). 벌레(虫) 두 마리가 봄(春)에 꿈틀대는 형상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래서 아쉬운가, 아니면 잘됐는가. 혹은 죽은 자가 있어 역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어 좋은가. 합리적 의심은 그냥 추론에서 끝내길 바란다.

 

김인환 기자 directo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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